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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폐 커미션 샘플

[유우님 피폐 커미션] 자격

 

우리는 서로에게 시한폭탄인데, 


 

 

 가까운 선배가 살해당했다.

 

 그가 처참한 몰골로 살해되었고, 범인은 잡히기도 전에 자살했다는 소식이 조문객의 입과 입을 건너 떠돈다.

 장례식장 가득 향의 냄새가 났다. 익숙하고 낯선 조문객이 오가고 방석들이 어지럽게 널려 있다가, 정돈되기를 반복했다. 허공에 고여있던 향의 연기가 시야에서 흩어진다. 그것에 시선을 두던 나는 아득한 어지럼증에 떠밀리고, 떠밀려 바닥에 무릎을 박았다. 말도 안 된다며 턱을 떨다가, 고개와 몸을 땅에 가까이하다가. 그의 죽음 앞에 가뭄 내린 땅처럼 갈라져 드문 눈물을 보였다. 더 이상 억울하단 말 하나 못 할 그 사람 앞에 나는, 당신을 지키지 못한 인간밖에 못 되어서. 사망에 일조한 후배 따위라서. 그렇다고 그걸 티 내기는 싫어 소리 죽여 울었다. 당신은 나를 더 이상 위로하지 못하니까. 무엇을 바라지도 않고 나는 목구멍에 힘을 줘 내 숨을 틀어막았다.

 

 눈물은 채 마르지 않고 숨이 발작할 즈음 진한 담배 연기가 마시고 싶어 주차장으로 나왔다. 담배를 입에 물고 라이터를 뒤적이는데 네가 슬그머니 뒤따라 나왔다. 나는 연기를 들이마셨다. 왜 왔어. 짓무른 눈으로 나는 너를 늦게 돌아봤다. 너의 발끝은 땅을 차고 있었지만, 그 슬퍼하는 두 눈은 누구를 향해있었을까. 저기 형체도 모르게 누워있을 내 선배였을까. 나였을까. 정적이 지속하는 가운데 서로의 숨을 참는 소리가 선했다. 모순적이지. 참는데 소리가 다 들려.

 한 대만 줘요. 네가 말했다. 진심이 아닌 걸 알았다.

 

 미안 나 돗대다.

 

 너는 담배를 피우지 않으니까.

 네가 두 눈을 내게로 향해 집중하는 게 보였다.

 

 담배 하나 제대로 못 챙기는 게 웃겨.

 

 그래. 웃겼다. 아주 우스웠다. 아는지 너는 내 말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래서 유리야. 불렀다.

 

 둘 중 하나가 구제불능이 되면 그땐 헤어지자.

 

 너는 여전히 대답이 없었고.

 

 이 각박한 삶에 필연 같은 거 없어. 변수는 늘 부지기수잖아. 그러니까 서로 힘들면 헤어지자.

 

 라고 근육이 풀린 얼굴로 말했는데, 직후 내가 당장 힘들다는 것을 깨달았다. 심지어 긴장이 너무 풀렸는지 피우다 만 담배는 담뱃재를 흩뿌리며 떨어졌다. 나는 아하하, 맥없는 웃음을 흘리며 이마를 문질렀다. 말하지 않아도 너는 알 것이다. 내가 무얼 말하고자 하는지. 왜냐하면 우리는 당장이라도 죽을 수 있으니까. 이런 말 정도는 기막힌 현실이잖아. 우린 언제까지고 경계하며 살아남아 제 몫을 다해야 하니까. 게다가 이 중 우릴 위협할 범인이 섞여 들어있을지 어떻게 알아? 우리는 우리가 죽는 날을 정할 수 없다고.

 

 그렇게 안일하게 말한 뒤로 우리는 나의 살점을 갉아 떼어가듯이 극히 소량의 대화를 했고, 내 입술의 마찰마다 할 말이 말라 갔다. 너와 대화하는 데 허락된 시간이 적었다. 나는 자주 할 말을 잃었으니까.

 많이도 생각했다. 너와 나는 시한폭탄이구나.

 서로의 시한폭탄이구나.

 정신적 한계가 온 육체는 수면을 재우쳤다. 내려앉은 분위기를 휘발하기 위해, 너는 나더러 겨울잠 자는 곰 같다는 괜한 농담을 했다. 그래. 나는 덩치도 크고 그 덩칫값을 못 하는 놈이니까. 내 꼴이 이러하니까. 겨울잠만 자면 그 거죽이 등에 붙고 터진 파카처럼 털이 다 빠져버리는 곰처럼 나는 나날이 핼쑥해졌다. 너는 나를 어색하게 대했고, 네 손끝은 부쩍 떨렸고, 늘 나의 가슴과 가까운 가구를 두드렸다. 알 수 있었다. 내 멀쩡하지 못한 상태를 알아차린 거겠지.

 

 선배. 어느 날 네가 불렀다. 하지만 나는 잠에 빠져 입을 벌릴 수 없었고.

 

 우리 둘 다 구제불능이니까 헤어질까요.

 

 대답하기엔 나의 의식은 오래된 전구의 필라멘트처럼 끊어져 손에서 벗어난 지 오래였다. 잠이 나를 침몰시키듯 꾸준히 몰려왔고, 힘줄이 잘린 듯 팔다리는 움직이지 않았다. 가위에 눌린 것처럼 손가락 하나 까딱할 수 없었다. 심리적? 신체적 피로? 여하튼 나는 일어나 한치 변명을 할 수 없었다. 내가 감정적이었어, 라며 내가 내뱉어 놓고 회수하는 꼴을 보일 수도 없고. 반쯤 진심도 맞으니까. 나는 조심스럽게 생각한다.

 나는 당장 죽을 수 있는 시한폭탄 같은 삶을 살고 있다.

 우리가 과연 사랑해도 될까. 우리는 안전할까. 자연사할 수 있을까. 우리는 결혼뿐만이 아니야. 죽음을 전제한 이 사랑을 우리는 견딜 수 있을까.

 적어도 나는 견디지 못했나 보더라고.

 

 선배.

 

 응?

 

 나랑 헤어지려고 이렇게 엉망으로 살아요?

 

 놀란 마음에 몸을 일으켜 눈을 뜨니 네가 없었다.

 

 그렇지만 유리야. 우리가 사랑할 수 있니.

 사랑이 허락되긴 하나.

 

 아, 유리야 보고 싶어. 네 새파란 눈의 꿈결과 입술을 더듬어 찾고 싶어. 나는 내 심장을 꺼내 보여주고 싶은데. 너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네 귀가 기능을 잃을 때까지 속삭이고 싶은데.

 

 유리야. 우리가 사랑할 수 있니.

 사랑이 허락되긴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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